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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뼛쭈볏 하얀페이트가 묻어버릴것 같은 미닫이 문을 양손으로 힘들게 제치며,
본문 중에서
안으로 들어섰다.
조금 이른시간이라 가게에는 손님은 거의 없었고, 깍다만 수염이 지저분해 보이는 주인아저씨가 담배를 펴대시면서,
“아가 오락할라고, 비싼디” 라는 말과 함께, 자욱한 담배 연기를 뿜어 대셨다.
“저 돈이써요. 아저씨.” 오락하게 바꿔주세요.
The face is the mirror of the mind,
and eyes without speaking confess the secrets of the heart
얼굴은 마음의 거울,
말하지 않는 눈이 마음의 비밀을 투영합니다.
顔は心の鏡、
言わない目は心の秘密を投影します。
Miracle Morning #356
2023년 1월 7일
행복한 아침 요한 (양진석) 입니다.
미라클 모닝 25,515
희망을 꿈꾸는 시간,
바로 지금 입니다.
일탈 – 배달사고.
CES을 돌며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여러가지 새로운 제품들을 보다가
갑자기 내 인생 첫, 정확히 말하면 두번째 일탈의 순간이 생각났다.
국민학교 2학년때로 기억한다.
이 나이때 기억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데,
그날은 내인생의 중요한 날중 하나인가 보다 드문드문이긴 하지만 기억이 난다.
이날의 기억중 걷다 지쳐 바라본 하늘에 회색구름이 뭉게 뭉게 피어오르고 있어서,
아 비오면 안되는데 하며 서둘러 걷던 기억과,
페인트 칠이 바랜 지금은 거의 볼수 없는 유리창과 창살로 만들어진 미닫이 문.
하야턴 미닫이문과 회색빛하늘,
그런 어느날 나는 일탈을 했다.
아니 나는 나를 찾아 나섰다.
우리 어린시절을 생각해보면 소위 놀것이라는 것이 많지 않았다.
요즘 아이들에게 그 시절 이야기를 하면 상상이 안될것같다.
거기엔 닌텐도도, 쏘니도 컴퓨터도 피시방도 스마트폰도 없었으니까.
그 시절 나는, 항상 심심해란 말을 달고 다녔던것 같다.
항상 집에 있는 엄마 할머니한테 심심하다고 말하면,
할머니는, “ 아가 가서 장찍어 묵어라”
처음엔 무슨소린줄 몰랐는데, 장찍어 먹으면, 입이 짜져서 계속 물마시러 다녀야 하니까
심심할 일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당시에도 이말을 들으면 힘이빠졌는데.
글로 옮겨도 힘이 빠지네.
아무튼, 내가 사람으로서 기억나는 다섯살 이후로 나는 줄곳 심심해를 쭉 입에 달고 살았다.
그나마, 나의 그 심심함을 채워줬던 놀이가,
동화책보기, 그림그리기, 그리고 몇학년 때부턴가 기억나지 않지만 그당시 “만들기”라고 불렀던 지금의 프로모델 같은것들을 하면서 놀았던것 같다.
이 심심함을 입에 달고 다니던 내게,
엄마가 심부름을 시키신다 “ 요한아, 쪼기 학교 앞에 가믄, 외삼춘 올거니까 가서 이것좀 주고와라”
심심하긴 했어도, 아직 신작로까정은 혼자서 가본적이 없는 나였기에 갈까 말까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래도 내가 젤 좋아하는 막내 외삼춘을 만난다는게, 무작정 싫지만은 않았던것 같았다.
그리고, 한번도 안가본 데까지 가보는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았다.
당시 우리집은 철도길 앞에 살고있었고,
나는 그 철도길을 따라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이번엔 학교 가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그것도 기차만 다니는 철길 다리를 건너 조짝 신작로 까지 나가야 했다.
아 다리아프다, 그리고 생각보다 너무 멀다 하면서, 나는 걷기 달리기를 반복하며,
외삼춘이 있다는 신작로까지 나갔고, 외 삼촌은 너무도 반갑게 나를 맞이해 주셨다.
그리고, 물건을 전달하면서 헤어지는 길에 내게 2000원이라는 용돈을 주셨다.
그당시에 십원만 달라고 떼를 썼었고, 십원이면 과자를 하나 사먹었으니, 지금 물가로 환산하면 한 200원 정도 가치가 있을거고, 그러면 지금 시세로 하면, 한 사십만원이라는 거금을 받은거 같다.
그리고, 당시만 해도 나에게 돈이란 10원 이면 충분했고, 돈은 과자와 바꾸는 도구 그 이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돈을 가져본적이 없어서, 뭘 해야지 하는 생각도 없었던게 사실이다.
그런데 10원만 보던 내게 2000원이란 돈이 생기니, 뭔가 이걸로 할 수 있는게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쪽, 고등학교 형아들이랑 어른들만 들락날락하던, 그 앞을 지날때면 문틈 사이로 저건 뭐지 했던 그 가게가 생각이 났다.
이곳은 다름아닌 오락실의 원조인 당시 이름은 모르지만, 우리 어린시절의 주류 오락실이
모니터 화면과 게임패드가 달린 게임기와 겔라그와 방구차, 보글보글이 주류였다면,
이 겔러그 오락실이 생기기 이전의 원조 오락실이 있었다.
이곳은 유원지에 있는 약간은 고전적인 총쏘기, 공던지기, 활쏘기 등등의 게임을 가지고 영업을 했던 그런 곳이었다.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분명히 엄마는 외삼춘을 만난걸 아니까 그리고 내가 엄마한테 외삼춘한테 돈받은걸 말하지 않으면, 분명히 외삼촌과 엄마가 이야기하다 들킬게 분명하고.
암튼 머릿속 계산으로 엄마한테는 1000원 받았다고 말하고,
나머지1000원으로 과자도 엄청 사먹고, 거기 어른들간데를 가보자 하고 맘을 먹었다.
이런거 보면 난 이때부터 좀 하고싶은건 다 이유를 만들어서 하고 산것같다.
그렇게 맘을 먹고나니, 이 뭐지 뿌듯함과 행복함.
아무튼 나는 일원어치의 잘못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은채,
동네 점빵에서 과자 몇개를 사서, 그 원조 오락실로 향했다.
쭈뼛쭈볏 하얀페이트가 묻어버릴것 같은 미닫이 문을 양손으로 힘들게 제치며,
안으로 들어섰다.
조금 이른시간이라 가게에는 손님은 거의 없었고, 깍다만 수염이 지저분해 보이는 주인아저씨가 담배를 펴대시면서,
“아가 오락할라고, 비싼디” 라는 말과 함께, 자욱한 담배 연기를 뿜어 대셨다.
“저 돈이써요. 아저씨.” 오락하게 바꿔주세요.
실은 이날 어떤 게임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는 게임마다 너무 못하니까, 그냥 돈만 넣코 바로 바로 게임이 끝나니까.
아저씨가 불쌍하다 못해 미안했는지. 내게 몇판을 더 공짜로 시켜 주셨던 기억이 난다.
이곳까지 와서 문득 42년 전 그날이 생각이 나는건 왜일까?
신기한 그곳을 가고싶어 궁금해서 멀리서 안절 부절 못하던 8살 요한이의 모습이
타임머신을 타고 42년을 지나 바다건너 이곳에 나를 그때 그모습과 똑같이 서있게 했구나 하는 생각이들어서다.
그냥 새롭고 신기한것을 좋아해서,
그 새롭고 신기한게 많은 이곳에 내가 서 있구나.
그리고, 사람은 변하지 않는구나.
조용히 신상품을 체험하기위해 줄을서서 기다리다.
8살 요한이도 지금의 나처럼 이걸 좋아했구나.
이생각이 들면서, 문득 그시절에 요한이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싶다.
다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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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메타버스, 웹3.0을 주로 방문.
결론은 대기업이고, 중소기업이고 다들 답은모르지만,
그들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도전하고 있다는 느낌.
개인적으로 AR SNS 론치를 준비하는 한국회사가 올해 세계를 강타하지않을까 하는 생각.
타이트한 일정에 체력적으로 조금 부담을 느끼고 있지만,
힘내서 오늘도 많이 배우고 오자.
아자, 아자, 힘내자!!
오늘도 여러분의 매 순간을
행복으로 지어나가 보세요.
항상 고맙습니다.
[ Morning Goal]
1, 명상
2, 글쓰기
3, 독서
4, 계획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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