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핸드

Summer Christmas

달그락 달그락,
아 ~~~!! 끝이 보이질 않는다.
이놈에 접시는 아무리 식기세척기가 도와 준다고 해도,
닦아도 닦아도 끝이 나질 않는다.

1997년 12월 듣도 보고 못한 IMF라는 게 터졌다.
내가 10월달에 시드니로 유학을 왔으니,
유학온지 두달만의 일이다.

본문 중에서

A stiff belief in myself is the first condition to overcome a slump.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슬럼프를 극복하는 첫째 조건이다.

自分への固い信念は、スランプを克服するための最初の条件だ。

2023년 1월 19일
Miracle Morning #367
미라클 모닝 25,506

행복한 아침 요한 (양진석) 입니다.

희망을 꿈꾸는 시간,
바로 지금 입니다.

치킨핸드.

달그락 달그락,
아 ~~~!! 끝이 보이질 않는다.
이놈에 접시는 아무리 식기세척기가 도와 준다고 해도,
닦아도 닦아도 끝이 나질 않는다.

1997년 12월 듣도 보고 못한 IMF라는 게 터졌다.
내가 10월달에 시드니로 유학을 왔으니,
유학온지 두달만의 일이다.

신문, 뉴스, 이곳 호주에서도 한국IMF 이야기 밖에 들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나라가 부도가 났다는 이야기와,
당시 대학생이긴 했지만, 경제관념이 전혀 없는 온실속의 나는.
군대를 갔다오긴 했지만, 고생이라는 걸 몰랐던 내게는 인생 일대의 커다란 시련이었다.
그당시 나는 얼마전까지 공부가 젤 힘들었어요를 시전하던 시절이었으니까.

암튼 IMF가 터졌고, 그것이 무엇을 불러올지 전혀 예상치 못하고 일주일이 지나니,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던 한국인 친구들이 하나둘씩 짐을 싸기 시작한다.

이유인 즉슨, 원래대로 치면 한국에서 100만원을 보내주면, 호주 달러로 1400달러정도가 되는데,
그래서 그걸로 생활비 학비를 충당 해야하는데,
이제 나라가 망해 한국 돈의 가치가 없어져, 100만원을 보내주면 700달러가 채 안되는,
다시말해 한국돈은 절반밖에 값어치가 없어졌다고 한다.

대부분의 유학생들이 집에서 보내주는 조공으로 생활을 했기에,
그 상황을 어쩌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는 친구들이 속출 했었다.

아.. 나는 인제 호주에 도착한지 날짜로는 두달도 채 안되었는데,
앞길이 막막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고민끝에 시작한 새로운 도전을 이런식으로 접어야 한다는건
어린 나였지만 받아 들일 수 없었다.

결론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일단 엄마 한테 전화를 걸었다.
” 엄마 한국 .IMF터졌다메, 겐찮아?”
엄마, ” 긍께, 인자 우짜야 쓰까 모르것다. 요한이 너는 어찔래”
나, ” 엄마 그냥 돈보내지 마쑈, 그냥 내가 한번 여기서 알아서 해볼랑께.”

머 고민해봤자 답도 안나오고,
그래 아르바이트 하면 되지, 어떻게 되겠지.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맘먹고,
일단 지금은 뚜벅인데, 차비도 아껴야 하니 자전거를 사기로 했다.

중고샵을 가서 자전거 가격을 물어보고, 무조건 젤 싼거를 달라고 했다.
저쪽에 100달라 자리가 있단다.
내가 보기에 짱짱허니 좋아보인다. 일단 합격.

요즘엔 한국도 일본도 자전거 타면서 헬멧을 쓰는게 보편화 되있지만,
호주는 그당시에도 법으로 규제가 되어있어 자전거탈때 헬멧을 안쓰면 위법이었다.

그런 연유로, 헬멧을 사야했고, 좀 제대로 된걸 사려고,
자전거 전문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채 1분도 되지않아 다시 오던길로 돌아갔다.

자전거를 100달라 주고 샀는데, 헬멧이 젤 싼게 200달라란다.
이런 무슨경우.

다시금 아까 그 중고샵으로 가서 헬멧을 달라고 했다.
아니 젤 싼 헬멧을 달라고 했다.
“자전거 헬멧은 여기도 40-50달라 정도 하는데” 하는 점원에 말.

“그냥 헬멧이면 되니까 더싼거 없나요?”

그러자 점원이 ” 잠시만요 생각하니까 오토바이 헬멧이긴 한데 5달라 짜리가 있어요”

그리고 점원이 들고나온, 샛노란 색깔의 오토바이 헬멧.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마치 시골 할아버지가 털털털 하면서 작은 오토바이를 타며 쓸법한 헬멧.

이 헬멧하고 형태는 같은데 좀더 누루칙칙한 색깔.

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자전거 100달라, 헬멧 5달라.

인제 더이상 버스비는 들지 않는다.
이걸로 이동 수단은 확보.

현재로서는 영어도 잘 못하고, 일단 잡일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여기 공부까지 하러 왔는데.
아무리 잡일을 해도, 이력서를 써서 돌리자고 맘을 먹고,
한달남짓 공부한 영어로 있는 경력 없는 경력 만들어.
정확히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뭐든지 시켜만줘보세요. 나 잘해요.
뭐 이정도의 내용이지 않을까 싶다.

암튼 이력서를 만들고, 복사도 돈드니까,
생각하니까 이때 다 손글씨로 써서 학교근처에 있는,
레스토랑 혹은 내가 보이기 일할수 있게 보이는 모든 곳에 일단 뿌렸다.

그곳중 서너군데에서 연락이 왔고,
나는 학교에서 그나마 제일 가까운 “브라질” 이라는 레스토랑에서 Kitchen Hand 부엌의 손, 소위 말하는 접시닦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실제 아르바이트한 레스토랑에서 보이는 전경.
지금은 편의점으로 바뀐듯하다. 저기 Beach Mart 창문은 그대로네.

실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나는 너무 좋았다. 내가 내돈으로 돈을 벌어서 생활한다는 것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같이 일하는 네이티브들과 매일 농담따먹기, 이시절 특히 영어로 하는 수만가지 욕은 다 배운거 같다. 뭐 언어라는게 욕부터 배우는게 순서라고 하지만.
아무튼 학교에서는 그냥 정해진것만 배웠다면,
그냥 살아있는 영어를 배우는 것 같아서 그당시에는 돈받으면서 영어공부한다 생각하며 참 재미있게 일했던것 같다.

그리고 일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당황스러운 실수와 함께 나만의 별명이 생겼다.

쉐프들과 서빙하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며, 친구들이 내 칭찬을 하길래.
그럼 내가 최고의 접시딱이지 라고 말하려고 한게 그만,
” I’m the best ChickenHand.* “그럼 내가 최고의 닭날개지”

난 요즘도 그러는데, Chicken.과 Kitchen이 종종 헷갈린다.

아무튼 이 어이없는 실수로, 그날 이후 닭날개(ChickenHand) 요한으로 친구들에게 불렸다.
덕분에 모르는 사람들도 내게와서, 아 니가 그 유명한 닭날개 하며, 농담한마디씩을 건네주었다.

하… 무지하게 챙피했지만, 지금생각하면, 참 젊은 날의 즐거운 에피소드다.

그렇게 그렇게 어학원 생활과 아르바이트가 익숙해질 무렵,
삶이 그렇치만 항상 순탄하게 재미지지만은 않다.

위기의 순간은 일을 시작한지 채 한달이 안된 섬머 크리스마스에 다가왔다.

1997년 12월 25일. 처음 맞이한 섬머 크리스마스에,
유리창 넘어 비키니를 입고있는 산타크로스를 멀리한채,
손에 고무장갑을 낀채, 사람들이 축제로 남기고간 접시들을 처리하느라 낑낑대고 있었다.

그리고 닦아도 닦아도 끝나지않는 접시와의 전쟁을 치르다 옆을보니,
하~~ 족히 오미터도 더되는 테이블위에 일미터 정도 높이로,
접시가 쌓여져 있는게 아니라,
쏟아져 올려져 있었다.

하긴 플로어 일하는 친구들도 바쁘니까 차마 정리할 시작이 없어, 그냥 대충 쌓아만 놓고 간것이었다.

그 쏟아지듣 쌓여진 마치 영화 센과 치히로의 엄마 아빠가 돼지가 되면서
먹고 남긴 접시더미 같은 모습의 내 일감과,
무심하게 시간은 12/24일 밤을 넘기고, 예수가 태어난 25일로 향하고 있었다.

접시를 보고 시계를 본순간 정말 많이 흔들렸다.
그냥 갈까. 어차피 나 아르바이트인데 그냥 간다고 돈 안받으면 되지 누가 뭐라고 하겠어.

한숨은 나왔지만, 사순절을 보내는 수도사의 마음으로 꾹꾹 도망가려는 내 발을 잡았다.

이런 내맘을 읽기라도 한듯, 친하게 지내는 쉐프하나가, 힘들지 하면서,
그 쏟아질듯한 접시들을 쓰레기와 접시로 정리를 해주었다.
너무도 고마웠다.

정리를 해주니, 5미터x 1.미터가 3미터x1미터로 줄었다.

그리고, 나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위해 그날 새벽 4시까지 혼자서
하얀 접시들과 씨름을 이어갔다.
기억에 울지는 않았지만, 울것같은 느낌은 엄청 들었다.

항상 크리스마스면 눈이 오기를 바라면서, 성당 친구들이랑 미사보고, 그길로 같이 술마시고 놀고 했는데,
멀리 호주까지 와서, 처음맞는 섬머크리스마스인데,
음식물 찌꺼기와 하얀 접시와 씨름하고 있는 내모습이 뭔가 큰 손해를 본듯한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힘들었던 장면이
하얀 팔래트에 오색빛깔 형형색색의 물깜이 뿌려진 시간들처럼 느껴진다.
인생이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건 정말인듯 하다.

그렇게 일을 끝마치고,

마지막 가계를 정리하는 메니져가 힘들었지 하면서, 내게 병맥주를 하나 건넨다.
가면서 한잔해 고생했어.

이른 새벽에 글을 쓰는데도, 이때 마신 맥주생각을 하니, 갑자기 한잔 하고 싶어진다. ㅎㅎㅎ.

지금까지 약 23년간 사회인으로 일을 했는데,
나는 그 Work Ethic이라는걸 아마도 이때 처음 배우고 느끼지 않았나 싶다.

일을하다 힘들다는 생각이 들때면,
항상 97년 12월 24일의 내인생 첫 섬머크리스마스의 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스물다섯 딱 인생의 중간 지점에서 배운 사는법을 잊지 않으려 한다.

글을쓰며, 젊은날을 회상하는게,
나 스스로도 무슨 여행을 한번 다녀온 기분이다.
추억여행.

새로운 아침을 추억여행으로 시작한 하루
오늘도 새로운 태양이 우릴 기다린다.
나의 도전과제는 무엇인가.
잘 사는것. 지금 이순간에 충실한 나,
그 이상 그 이하는 없다.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오늘이 되자.

오늘도 여러분의 매 순간을
행복으로 지어나가 보세요.
항상 고맙습니다.

[ Morning Goal]
1, 계획
2, 정리
3, 명상
4, 독서
5, 글쓰기 – 02:00

유학시절 글 모아보기 – 열심과 방황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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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응원하는 법.

1,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 지인에게 블로그 소개하기.
특히 현재 힘든상황에 계시거나, 희망이 필요한 분들에게 제글이 읽혀지고 그들에게 희망이 될수 있다면, 저는 참 행복할것 같습니다.

2, 각종 SNS에 링크 쉐어하기

3, 코멘트 달기.
구체적으로 이런 애정어린 코멘트는 저에게 힘이 됩니다.
3.1, 오타에 대한 조언 – 아침에는 노안으로 눈이 잘 안보여 오타가 심할때가 많습니다.
3,2. 철자법에 대한 조언 – 아무래도 외국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철자가 헷갈릴때가 있습니다.
3.3, 연관된 본인의 에피소드 이야기
3.4, 인삿말
3.5. 뭐든지 다 좋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m(__)m

Johan Jeensuk Written by:

6 Comments

  1. Teresa
    2023年1月19日
    Reply

    ChickenHandㅎㅎ
    우리 미국수녀님은
    장날에 감자 사러가서
    “남자 주세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 2023年1月19日
      Reply

      남자 주세요. ㅋㅋㅋ.
      그 수녀님 무의식 중에 속마음을..ㅋㅋㅋ.

      내 실수보다 그 수녀님이 한수 위시네.
      동성이 드리기로 했다. ㅋㅋㅋ

      • Teresa
        2023年1月19日
        Reply

        그 수녀님은 하늘나라에계셔ᆢ
        동성이는 그대로 두기로

        • 2023年1月20日
          Reply

          에구. 이런이야기 들으면 작은 화살기도라도
          하는 거라고 어릴적 수녀님들께 배움.
          천국에서 영면하소서.

          동성이는 다른데 보내는걸로.ㅎㅎ

  2. 이동성
    2023年1月19日
    Reply

    진석이가 직업윤리 전에 책임감이 강한 청년이었네^^~

    • 2023年1月19日
      Reply

      책임감은 그냥 하다 봉께,
      발을뺄 타이밍을 놓쳤것제.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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